미군이 글로벌 경제 파장을 우려해 하르그 섬 대신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7개 섬으로 지상군 타격 목표를 선회하고 있지만, 방어선 돌파 과정에서의 인명 피해 위험과 전후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영유권 분쟁 처리라는 까다로운 외교·군사적 딜레마를 동시에 안게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이 해병대 및 공수부대를 아우르는 약 7000명의 지상전 병력을 이란 인근으로 전진 배치 중이라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초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타깃은 하르그 섬이었다. 이란 전체 석유 수출량의 90%가량이 이곳을 거쳐 나가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결단만 내리면 하르그 섬을 즉각 타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석유 인프라가 초토화될 경우 이란의 전후 재건이 수년간 지체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페르시아만 내륙 깊숙이 위치한 하르그 섬을 완전히 장악하려면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한데, 경량 장비만 갖춘 2000명의 공수부대 병력만으로는 장기전이 어렵다. 중장비를 실은 해군 함정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포진한 이란의 방어선을 먼저 돌파해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29일 CNN 방송은 이란 내부에서 '움직이지도 침몰하지도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7개 섬이 새로운 타격 목표로 부상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이 페르시아만으로 향할 때 초입인 해협 동쪽에서 마주치는 곳은 호르무즈 섬, 라라크 섬, 케슘 섬, 헨감 섬이다. 이 4개 섬은 이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위치해 본토와 인접해 있다. 이 구역을 넘어서면 해협 서쪽 해상의 아부무사 섬, 대(大)툰브 섬, 소(小)툰브 섬이 나타난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7개 섬은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방어하기 위해 형성한 '아치형 방어선'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해협의 특성상 대형 유조선이나 군함이 항해하려면 서쪽에 위치한 3개 섬을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알리레자 탕시리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군사령관은 생전에 이 섬들을 군사적으로 무장하고 작전 거점화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미군의 지상 작전이 본격화될 경우 이 핵심 요충지들을 점령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칼 슈스터 전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장은 CNN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지휘관이라면 현재 배치된 2개 해병원정대 병력 5000명 전체를 이 섬들 점령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륙작전을 실행하려면 병력을 실은 군함이 해협 동쪽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세드릭 레이턴 CNN 군사분석가는 이 진입 단계에서 동쪽 4개 섬, 그중에서도 라라크 섬이 치명적인 위협 요소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라라크 섬을 기점으로 미사일과 소형 공격정을 활용해 해협을 지나는 모든 함정을 봉쇄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해군 함정에 탑재된 CV-22 오스프리 틸트로터 항공기와 헬리콥터 등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비행 속도가 느려 이란의 방공망이 가동될 경우 격추될 위험이 크다. 섬을 장악한 지상군 병력도 이란 본토에서 쏟아지는 드론·미사일·포병 화력에 직접 노출돼 추가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보고된 미군 측 피해는 사망자 13명, 부상자 300여명에 달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슈스터 전 센터장은 하르그 섬을 공격하는 것보다 아부무사 섬 등 해협 서쪽 3개 섬을 점령하는 편이 미군에 전략적 우위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하는 이란 정권의 경제적 기반 파괴 문제도 상대적으로 덜 수 있는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3개 섬을 점령하더라도 외교적 난제가 남는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영국 식민 통치에서 독립하던 시기,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해당 섬들을 강제 병합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의 영유권 주장에 반발하며 유엔 차원의 분쟁 조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에 반미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CNN 방송은 미군이 이 섬들을 점령할 경우, 전쟁이 끝난 뒤 이를 이란에 반환할지 아니면 아랍에미리트(UAE)에 양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외교적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