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가상자산 과세 시점을 재차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관련 업계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시행이 지연될 경우 자금의 해외 유출을 방어하는 동시에 세금 부과를 위한 전산망을 확충할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빗썸·코인원·디지털엑스·고팍스 등 5대 원화거래소는 최근 당정청의 과세 유예 검토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거래소들은 국세청과 연동할 수 있는 규격화된 통신망이 없는 데다 데이터 제출 범위마저 불분명해 세무 자료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업체마다 데이터 형식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원화 입출금 기록, 지갑 주소, 코인별 보유량뿐 아니라 하드포크·에어드롭·스테이킹 등 다양한 거래 형태를 통일된 기준으로 묶어낼 지침이 없었던 탓이다.
다음 달 국세청의 세부 과세 지침 발표가 예고돼 있으나, 가상자산업계는 당장 내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하기엔 전산망 등 물리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해왔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뒤 벌써 세 번이나 미뤄졌고, 이번에 또 지연되면 총 네 차례 연기되는 셈이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과세 데이터의 자동 추출을 위해서는 매수 단가 및 하드포크·스테이킹 등 각 거래 유형별 계산법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며, 제도가 유예되면 인프라를 완성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사실상 전산망 구축에 손도 대지 못한 상태였다며, 연기된 기간 동안 거래 내역을 일관되게 추출할 수 있는 체계부터 갖추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과세를 회피하려는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 기반의 탈중앙화금융(DeFi)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한 가상자산 업체 대표는 파생상품 취급이 막힌 국내 거래소 특성상 이미 자금 유출이 진행 중이었고 세금 부과가 이를 가속화할 우려가 컸다며, 한시적으로나마 자본 이탈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예정된 일정대로 과세를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세 번이나 미룬 제도를 재차 연기하는 건 조세 형평성에 위배되며, 불완전한 시스템은 일단 시행한 뒤 보완해 나가면 된다는 논리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는 "국세청 고시가 나오면 세액 산출 방식이 명확해질 테고 전산망 구축도 진행 중이므로 굳이 더 미룰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거래 내역 공유 등 미진한 부분은 제도를 운영하며 점진적으로 개선하면 된다"며 "양도소득과 기타소득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할지 역시 충분히 검토를 마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역시 26일 성명에서 "오랜 기간 논의해 만든 과세 제도를 정치권이 표심과 여론을 의식해 자꾸 미루는 것은 조세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한 과세 연기가 청년들의 자산 축적에 도움이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