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챗봇 '클로드' 개발사인 앤트로픽이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AI 모델의 상징적 라이벌 '챗GPT'의 오픈AI를 제치고 관련 기업 최초로 증시 입성에 나선다.
26일(현지시간) 앤트로픽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관련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상장 채비에 돌입했다.
상장 목표 시기는 다음 달이며, 나스닥에서 'ANT'라는 종목 코드로 A형(클래스 A) 보통주 거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신고서에는 정확한 공모 주식 수나 희망 가격대가 빠져 있다.
다만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를 인용해, 앤트로픽이 이번 상장에서 기업가치를 최대 2조 달러(약 2700조원)로 평가받고 1000억 달러(약 133조원)를 조달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청사진이 실현된다면 6월 스페이스X가 세운 기존 최고 기록(기업가치 1조7700억 달러·조달액 750억 달러)을 모두 갈아치우게 된다.
외형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올해 상반기에만 162억8600만 달러(약 21조6000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전년 동기 대비 14배 넘게 몸집을 키웠다. 같은 기간 순손실 규모는 807억4800만 달러(약 107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약 724억 달러는 과거 자금 조달 때 발행한 전환사채(CB)와 파생상품의 가치 변동으로 발생한 비현금성 회계 처리 비용이다. 이 같은 일회성 장부상 손실을 제외하면 조정 영업이익은 16억1800만 달러(약 2조1000억원)로,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반기 기준 흑자를 냈다.
자금 여력도 탄탄하다. 6월30일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약 1124억 달러와 단기 투자자산 약 193억 달러 등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총 400여 쪽에 달하는 증권신고서 가운데 무려 94쪽을 '위험 요인'에 배정해 AI의 부작용을 상세히 기술했다는 점이다. 첨단 AI가 악용되거나 무단 복제·무기화될 가능성, 그리고 고도의 자율성을 띠고 작동할 때 인류 생존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자사 시스템을 이용한 해킹 시도 사례까지 언급하며 경각심을 높였다.
또한 현재 미 국방부를 비롯한 행정부와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핵심 리스크로 지목했다. 이러한 마찰로 인해 미 정부를 상대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앤트로픽의 AI 사용을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이번 IPO를 통해 독특한 지배구조도 공개됐다. 공동창업자들은 '파운더 LLC'라는 별도의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하고 이곳에 F형(클래스 F) 주식을 단 한 주 배정했다. 이 한 주만으로 주주총회 일반 안건에서 50.1%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해, 실제 보유 지분과 무관하게 경영 전반을 장악하는 구조다.
다만 창업자들이 이사회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명의 독립 수탁자가 이끄는 '장기이익신탁'(LTBT)에 T형(클래스 T) 주식을 부여해 이사진의 과반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맡겼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구글 같은 기존 투자자들에게는 N형(클래스 N) 주식이 주어졌다. 배당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은 누릴 수 있지만 의결권이 없어 경영 개입은 불가능하다. 이 N형 주식은 향후 제삼자에게 매각할 때 A형 주식으로 전환된다.
현재 2억3000만~2억5000만주씩을 보유한 공동창업자들은 각자 지분의 80%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사 차원에서도 전체 발행 주식의 5%를 공익 기금으로 적립했다.
창업자들은 증권신고서에 동봉한 편지에서 AI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로 평가했다. 이어 '인류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첨단 AI를 책임감 있게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 회사를 설립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IPO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생성형 AI 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르네상스 캐피털의 맷 케네디 수석전략가는 몇 달 전과 달리 AI 기업 가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이 사라졌다며, 앤트로픽이 지난 여름보다 훨씬 까다로워진 공모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이벌인 오픈AI와의 행보 차이도 관전 포인트다. 오픈AI는 AI 안전성 문제와 가치 평가 등을 고려해 상장 일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반면 앤트로픽은 공개 기업으로서 투명성을 높여야 AI 안전성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상장을 강행해 대조를 이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