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앞설 수 있는 경쟁력은 속도와 효율성뿐입니다. AI가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한돌 배리에이셔널AI(Variational AI) 대표는 28일 서울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6(BIOPLUS-INTERPHEX KOREA 2026, BIX)'의 ‘AI 기반 바이오파마 의사결정' 세션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소연 캐나다 프로비던스 헬스케어 벤처스 디렉터가 좌장을 맡은 이날 패널에는 김 대표와 함께 크리스토퍼 리 바이오박스(BioBox) 대표, 팔로마 프리에토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Telescope Innovations) 운영 부사장 등 캐나다 AI·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한돌 대표는 "머신러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과학이고, 지금 있는 어떤 실험 과학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AI를 평가할 때는 6개월마다 판단 기준을 새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도 AI 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지난 1년 동안 모델 아키텍처를 여러 차례 변경해야 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AI 기술을 평가할 때는 최소 6개월마다 기존의 사전 확률(Priors)과 기준을 전면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작년이나 오늘 목격한 AI의 수준을 바탕으로 1년 뒤 자사 파이프라인이 도달할 지점을 단순 예측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이미 시장에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처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김 대표는 "AI를 도입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라고 말하며 "수백, 수천 배의 비용과 10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했던 일을 해내는 효율성과 속도야 말로 스타트업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요소"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그는 국내에 AI 신약개발 회의론이 남아 있는 이유로 과거의 경험을 들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2019~2020년 무렵 AI를 신약 발굴에 쓰려는 기업들이 여러 건의 계약을 맺었지만 큰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며 "그 기업들의 과학적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핵심 원인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당시의 AI의 역량은 지금의 대략 100분의 1 수준이었다"며 "1~2년 뒤에는 AI 역량이 지금보다 수백 배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머크와 3억4900만달러 규모 계약 "핵심은 속도와 효율"
배리에이셔널AI는 저분자 화합물 생성에 쓰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한 바이오텍이다. 종양학을 비롯해 대사·심혈관·중추신경계(CNS)·면역 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신규 저분자 화합물 발굴부터 선도물질 최적화까지 지원한다.
김 대표가 '속도와 효율'의 근거로 든 사례는 머크(MSD)와의 계약이다.
그는 "머크와 계약할 당시 우리 팀은 12명 정도였고, 2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 3억4900만달러 규모 계약이었다"며 "지금은 20명인데 더 크게 늘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전례 없는 속도와 품질을 함께 확보해 신규 저분자 화합물을 찾고, 누구보다 빨리 개발 후보물질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단백질이나 바이오 의약품과 달리, 저분자 화합물 신약 발굴은 일반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로는 결코 수행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저분자 화합물에 특화된 생성형 파운데이션 모델의 차별성을 꼽았다.
"AI 주권보다 중국과의 경쟁이 더 중요"
AI 주권 문제에서는 다른 패널들과 생각이 달랐다.
김한돌 대표는 "초기 저분자 신약 발굴은 ChEMBL, PubChem 같은 공개 데이터로 학습하기 때문에 AI 주권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며 "핵심은 데이터 소유권이고, 계약에 따라 도출된 분자의 지식재산권(IP)은 고객사가 가지면 된다"고 제시했다.
그는 "더 중요한 지정학적 질문은 임상적으로 리스크가 줄어든 자산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라며 "유일한 방법은 AI를 규모 있게 도입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과 캐나다에 대해서는 "인구 규모가 비슷하고 우수한 인력과 의료진을 갖췄지만 글로벌 빅파마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전임상 프로그램이 많은 나라"라며 "투자 회수(엑시트) 통로가 될 글로벌 챔피언 기업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평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패널들 역시 김 대표의 진단에 깊이 공감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AI가 가져올 구조적 혁신을 제시했다.
한국과 캐나다는 우수한 임상 인프라와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도 글로벌 빅파마가 부재하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전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바이오 강국이며 캐나다 역시 세계 8위권의 역동적인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리 바이오박스 대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의 기민한 AI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리 대표는 “대형 제약사들은 6000명에 달하는 법무팀과 복잡한 조달 과정 때문에 새로운 기술 도입이 1년씩 지체되지만, 소규모 바이오 기업들은 훨씬 유연하게 최신 AI를 도입해 운영 비용(OpEx)과 자본적 지출(CapEx)을 늘리지 않고도 반복적인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AI 시스템이 과거의 가설이나 경영진의 주관적 확신을 기각하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수용하는 ‘AI 우선(AI-first)’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5~10년 내에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로마 프리에토 텔레스코프 이노베이션스 부사장은 "소프트웨어 AI 모델과 실제 물리적 화학·의약품 공정을 연결하는 ‘자율 실험실(Self-driving labs)’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프리에토 부사장은 "기존의 수작업 워크플로우를 그대로 둔 채 로봇만 투입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기술 공급자와 제약사가 단순 거래 관계를 넘어 워크플로우를 함께 재설계하는 진정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