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상화폐, 인공지능(AI), 베팅 관련 업체들이 현지 정치권의 막강한 자금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자료 분석 결과 지난 2024년 1월 1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15개월 동안 3대 신흥 산업 분야에서 중간선거에 지출한 후원금 규모는 최소 2억9400만달러(약 4100억원)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같은 기간 미국 내 모든 기업이 지출한 총액인 5억1700만달러(약 7200억원)의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자금 추적 단체 관계자 및 공화·민주당 소속 선거 전문가 10여 명은 이들 신흥 기업군이 향후 투표 결과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고 입을 모았다.
세 분야 중에서도 선제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단연 가상화폐 시장이다.
코인베이스, 리플, 앤드리슨 호로비츠는 2024년 선거를 겨냥해 정치자금 모금 단체(슈퍼팩)인 '페어셰이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 오하이오주(州)에서 민주당 소속 중진 상원의원 셰러드 브라운을 낙선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셰러드 브라운 의원은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해 온 인물이다.
기존 기업 후원이 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였다면, 최근 가상화폐 진영은 당적을 불문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반대 성향 정치인의 입지를 좁히는 데 수백만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페어셰이크 슈퍼팩은 현재 1억3000만달러(약 18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액은 코인베이스, 리플, 앤드리슨 호로비츠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로이터통신 분석에 따르면, 앤드리슨 호로비츠는 이번 선거를 위해 가상화폐 및 AI 연계 팩에 8100만달러(약 1130억원)를 출연했으며, 이 중 최소 2380만달러(약 330억원)가 페어셰이크 측으로 전달된 것으로 파악된다.
2024년 선거 무렵까지만 해도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AI 진영 역시,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정치 단체를 향한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서는 추세다.
현재까지 AI 슈퍼팩인 '리딩 더 퓨처'에는 1억4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자금이 모였고, 이와 별개로 오픈AI의 공동 창립자 그렉 브록먼과 부인 안나 브록먼은 '마가'(MAGA Inc) 슈퍼팩에 2500만달러(약 350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앤트로픽의 경우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퍼스트 액션에 4000만달러(약 550억원) 를 전달했으며, 해당 금액의 약 50%가 연계 팩을 거쳐 선거전에 투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사는 '퍼블릭 퍼스트' 슈퍼팩에도 390만달러(약 55억원)를 추가로 지원했다.
특정 정당을 후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사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을 집중 지원하는 이러한 전략은 가상화폐 시장이 앞서 보여준 행보를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일례로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올해 6월 치러진 뉴욕 선거에만 도합 2300만달러(약 320억원)를 쏟아부었다.
당시 두 기업이 각기 다른 민주당 소속 출마자를 후원하면서, 해당 선거는 사실상 두 기업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선거자금 감시단체 오픈시크릿의 브렌던 글래빈 이사는 "출마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실질적으로는 두 거대 AI 기업 간의 정면승부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목할 분야는 온라인 스포츠 베팅 시장이다.
드래프트킹스, 팬듀얼, 파나틱스, 베트365 등 관련 업체들은 이번 중간선거 과정에서 7200만달러(약 1000억원)를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아메리칸 컨서버티브 펀드' 및 '아메리칸 퓨처'와 같은 연계 팩을 활용해, 베팅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각 주(州) 단위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폴리마켓의 모기업은 올해 6월 마이크 존슨(공화·루이지애나) 하원의원을 돕는 슈퍼팩에 100만달러(약 14억원)를 건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3대 신흥 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규모의 정치 후원금이 쏟아지면서, 전체 선거 자금 규모는 유례없는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다.
2024년 선거 당시 전체 기업이 2년에 걸쳐 지출한 선거 관련 자금은 4억6100만달러(약 6400억원)였으나, 이번 중간선거 국면에서는 불과 1년 3개월 만에 그 수치를 넘어섰다.
퍼블릭 시티즌의 릭 클레이풀 연구 이사는 "이번 선거전에 투입된 기업들의 정치자금 규모는 과거 어떤 선거와 비교해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이라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