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격화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가동했던 비상 대응책을 다시 도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EU 에너지 장관들을 화상으로 긴급 소집해 이 같은 뜻을 전했다.
집행위원은 이란 전쟁이 촉발한 시장 불안정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 내 주요 에너지 시설이 이미 타격을 입은 만큼, 교전이 멈추더라도 그 충격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현재의 비상 국면이 언제 끝날지,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2022년 사태 당시 동원했던 대책에 버금가는 다각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는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역내 가스 유입이 급감했을 때도 비상 체제를 가동했다. 당시 ▲천연가스 가격 상한선 설정 ▲에너지 업체 횡재세 징수 ▲가스 소비량 강제 축소 등 고강도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집행위원은 회의 전날 EU 에너지 장관들에게 보낸 서한과 별도 성명을 통해서도 회원국 간 긴밀한 공조를 강조했다.
원유와 항공유, 경유를 비롯한 핵심 석유 자원의 수급 안정을 위해 각국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U 내 항공유 및 경유 수입량의 40% 이상이 걸프 지역에서 들어오는 만큼, 물류·교통 분야를 필두로 선제적인 에너지 수요 감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이를 두고 각국 정부가 국민에게 불필요한 자동차 운행이나 항공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집행위원은 아울러 특정 국가의 단독 행동이 인접국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며, 석유류의 역내 유통을 제한하거나 정유업계의 가동률을 떨어뜨리는 등 공동 보조를 흐트러뜨리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동발 불안은 이미 실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에너지 가격 급등 영향으로 2.5%(잠정치)까지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EU 당국이 아직 물리적인 에너지 배급 통제에 나선 것은 아니다.
유럽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휴일 차량 운행을 통제하고 연료를 할당제로 배분하는 극약 처방을 시행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