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의료용 대마의 치료 효과에 주목하며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한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로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국민 안전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0일 발간한 '2025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글로벌 의료용 대마 시장이 2027년 10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은 관련 규제를 완화하며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개발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유엔(UN) 마약위원회도 2020년 대마를 마약 목록에서 제외하며 국제적 인식 변화를 공식화했다.
반면 한국은 환각 효과를 내는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과 의학적 활용 가치가 확인된 칸나비디올(CBD)을 구별하지 않고 마약류관리법으로 일괄 규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고순도 CBD 추출 기술을 확보하고도 제품 생산이나 판매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경북 안동을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지만, 정작 핵심 규제는 손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규제의 부작용은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허가받은 의료용 대마 성분 의약품은 희귀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하며,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환자 본인 부담은 연간 20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줄었지만, 나머지 1800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수입 의약품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보험재정을 압박하는 셈이다.
문제는 해법이 있음에도 제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디올렉스의 핵심 특허가 이미 만료됐거나 10년 내 만료를 앞두고 있어 복제약 개발이 가능하다. 다만, CBD 원료 사용 금지 규제로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국산 복제약이 나오면 약값을 크게 낮춰 환자 부담과 보험재정 지출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항암 치료 부작용 완화, 다발성경화증 경련 억제 등 해외에서 효과가 입증된 다른 대마 유래 의약품들도 국내에선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합법적 산업화 길이 막힌 사이 불법·비공식 유통은 확대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CBD 제품을 구매해 쓰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식용 대마씨 오일을 CBD 오일로 오인해 암이나 파킨슨병, 뇌전증 같은 중증 질환 치료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병을 악화시키고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