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위기를 맞았던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이 차세대 생산기술을 본격 도입하며 재도약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텔은 9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州) 소재 팹52 생산시설이 완전 가동 단계에 진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시설에는 회로선폭 1.8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수준으로 제작하는 18A 공정 기술이 적용됐다. 회사 측은 "생산 규모를 늘릴 준비를 마쳤다"며 외부 위탁생산 고객들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놨다.
현재 5나노미터 이하 파운드리 대량생산은 전 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만 수행 가능한 영역이다. 인텔의 18A는 이들이 양산 중인 3나노미터보다 한 단계 앞선 기술력으로 평가받는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한 뒤 18A와 14A 등 최첨단 공정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왔다. 당시 회사는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2위 파운드리 사업자로 올라서며, 궁극적으로는 TSMC를 추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인텔은 "18A를 미국 내에서 개발되고 생산되는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체 수요에 맞는 칩을 생산해 해당 공장이 독립적인 수익 구조를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텔은 18A 공정으로 만든 노트북용 신형 프로세서 '팬서 레이크'를 처음 공개했다. 이 차세대 칩은 팹52에서 제조되며 내년 출시되는 노트북 제품들에 탑재될 예정이다. 인텔 측은 팬서 레이크가 기존 제품의 장점은 유지하되 약점은 개선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모델처럼 고도로 복잡한 연산 작업에서는 탁월한 성능을 보이면서도 전력 소비는 극도로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구성했다는 것이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 언제나 인텔의 가장 앞선 연구개발과 제품 설계, 생산의 중심지였다"며 "미국 내 사업을 확장하고 시장에 새로운 혁신을 제공하면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인텔은 또한 이 공장에서 18A 공정 프로세서를 장착한 서버용 '제온 6+'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해당 제품들은 내년 상반기 시장에 나올 계획이다.
인텔은 지난 7월 경영 정상화를 목표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실시하면서도 18A 제조 공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부터 경쟁력 있는 칩 생산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향후 14A 공정의 최첨단 반도체 제조는 확정된 고객 주문 상황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는 인텔이 최근 몇 년간 최첨단 칩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어온 가운데, 회복을 위한 투자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8월 미국 정부는 자국 제조 역량 강화 차원에서 인텔 지분 10%를 취득했다. 인텔은 이와 별도로 일본 투자기업 소프트뱅크와 AI 칩 선두업체 엔비디아로부터도 투자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