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미국 행정부에 향후 관세 조치에 관한 명확한 설명을 촉구했다.
집행위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이 지난해 8월 EU·미국 공동 성명에서 양측이 합의한 '공정하고 균형 잡히며 상호 이익이 되는' 대서양 무역·투자 관계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집행위는 성명에서 미국을 향해 "합의는 합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EU가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해온 만큼 미국 역시 공동 성명에 명시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U는 지난해 7월 회원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품에 적용되는 상호관세율을 30%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6000억달러(약 865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집행위는 이를 근거로 "EU 제품이 기존 합의에서 명확히 정해진 상한선을 초과하는 관세 인상 없이 계속해서 가장 경쟁력 있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행위는 또한 "관세는 사실상 세금이며, 다수의 최근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듯 소비자와 기업 모두의 비용을 끌어올린다"며 관세의 본질적 위험성을 경고했다. 특히 "관세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부과될 경우 필연적으로 혼란을 낳고, 국제 공급망 전반에 걸쳐 신뢰와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성명은 미 연방대법원이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에 위법 판결을 내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대체하기 위한 '글로벌 관세' 부과 방침을 잇달아 변경하면서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에 나왔다. 집행위는 마로시 셰프초비치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및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연이어 통화하는 등 미 행정부와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동 성명에 명시된 목표인 관세 추가 인하를 위한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회 차원에서도 제동이 걸렸다. 24일로 예정됐던 EU·미국 무역합의 승인 절차가 이번 판결의 여파로 불투명해졌다. 유럽의회 무역위원회의 베른트 랑게 위원장은 23일 회의에서 "적절한 법적 검토와 미국 측의 명확한 이행 확약이 이뤄질 때까지 입법 절차를 보류해야 한다"고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랑게 위원장은 "미국 행정부가 완전한 관세 혼란에 빠진 상태"이며 "EU를 비롯한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 사이에서는 의문과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추가 조치에 앞서 법적 명확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