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2분기에만 118억달러(약 16조4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향후 피해 규모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번 손실 규모는 해당 매체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분기별 실적 자료를 종합해 산출한 결과다. 업체별로는 도요타가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로 최대 피해를 봤고, 이어 폭스바겐 15억1000만달러, 제너럴모터스(GM) 11억달러, 포드 10억달러 순으로 타격이 컸다. 혼다는 8억5000만달러, BMW 6억8000만달러의 손실을 각각 발표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는 6억달러, 기아는 5억7000만달러의 피해를 입어 현대차그룹 전체로는 11억7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업체 중에서는 마쓰다와 닛산이 각각 4억7000만달러씩 영향을 받았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사들의 올해 순이익은 작년 대비 25%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0년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자동차 업계가 관세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비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거나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두 가지 대안 모두 단기간 내 실행이 어려운 이유에서다.
도요타는 내년 3월 마감 회계연도 기준으로 관세 관련 손실이 95억달러(약 13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연간 순이익은 전년 대비 44%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제조업체들이 제품 가격 인상을 주저하는 배경에 대해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필립 후쇼아 애널리스트는 "어떤 기업도 다른 곳보다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며 "모든 회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소셜미디어 언급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의회가 캘리포니아주(州)의 배출가스 규제와 내연기관차 단계적 퇴출 계획을 중단시키는 법안을 가결해 업체들에게는 일부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환경규제로 인해 내연기관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판매 확대나 테슬라 등으로부터 고가의 배출권 크레딧 구매를 강요받아 왔다.
생산거점의 본토 이전 역시 더딘 진행이 불가피하다. GM은 현재 멕시코에서 생산 중인 쉐보레 이쿼녹스와 블레이저 모델을 2027년부터 미국 공장에서 제작하기 위해 40억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예상보다 둔화된 상황에서 유휴 전기차 생산라인을 내연기관차 제조시설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대부분 제조사들은 생산 효율성을 위해 동일 모델을 복수의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정치 환경 변화 가능성과 막대한 설비 투자비용, 장기간의 건설 기간을 고려할 때 신규 생산시설 건립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능력 확충을 결정하더라도 이는 관세보다는 미국 시장의 견고한 수요에 기인한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관세 정책과 무관하게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의 생산 증대는 이미 업계의 기본 방향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현지 생산 확대 추세를 앞당길 수 있다고 이 매체는 평가했다. WSJ은 "무역 조치들이 판매지 인근에서 제조하는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와 유럽, 중국 등 핵심 자동차 시장들이 각기 다른 규제와 기술, 고객 취향으로 인해 분화되면서 제조업체들의 현지 설계·생산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