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발발로 글로벌 에너지 물류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차단되자,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파나마운하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중동발 에너지 수급 불안을 해소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등 미주 지역으로 조달처를 다변화한 데 따른 현상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청은 무력 충돌 이후 물동량이 늘면서 통과 슬롯(운항 시간대) 경매 단가가 종전 13만5000달러(약 2억원)에서 최근 38만5000달러(약 5억7000만원) 선까지 3배가량 뛰었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일시적인 수요 폭증으로 대기열을 건너뛰려는 수요자가 100만달러(약 14억80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이례적인 사례까지 등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파나마 운하청장은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및 컨테이너선 부문이 뚜렷한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운하를 통과하는 전체 화물 중 에너지 품목의 점유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 아거스미디어 자료를 바탕으로, 하루 평균 운하 통항권 경매 참여 횟수가 개전 전과 비교해 5배가량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수요가 가장 집중되는 '파나막스' 수문의 경우 최종 낙찰 금액이 평시 대비 10배 수준까지 뛰어오른 상태다.
로스 그리피스 아거스미디어 미주 책임자는 "이러한 운임 폭등세는 미국 멕시코만 연안을 거점으로 석유·연료·석탄 물량을 확보하려는 아시아 바이어들의 치열한 경쟁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동 리스크의 대안으로 미주 대륙에 몰려들면서, 기존 핵심 수요처였던 유럽과 아시아 간 '미국산 화석연료 쟁탈전' 또한 전례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앞서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을 줄이는 대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매입량을 대폭 늘려왔다.
안드레스 로하스 S&P 글로벌 LNG 분석가는 "현재 아시아 역내 가스 시세가 유럽 시장을 웃돌고 있어, 대서양에서 출하된 화물선들이 아시아로 뱃머리를 돌리는 흐름이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